1.개요
2.화산재 아래에서 나온 로마
서기 79년 8월 24일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하며 로마 도시 폼페이와 헤르쿨라네움, 주변의 부유한 별장들이 묻혔다. 이 유적들은 18세기 중반부터 차례로 발굴되어 공개됐다. 헤르쿨라네움의 상당 부분은 지금도 현대 도시 아래 있어, 18세기에 판 지하 터널을 통해서만 살펴볼 수 있었다. 그 터널이 그랜드 투어 여행자들의 눈길을 끌었다.[4]
잃어버린 문명을 체계적으로 되찾으려는 노력은 18세기에야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아테네, 헤르쿨라네움과 폼페이, 파에스툼, 팔미라 같은 유적의 모습을 실측 도면과 그림으로 담은 책이 유럽 곳곳에 퍼졌다.[1]
유럽의 교양 있는 젊은이들은 이탈리아로 '그랜드 투어'를 떠났다. 로마에서는 안내인을 따라 박물관과 유적을 돌았고, 고대 조각을 본뜬 작품과 초상화를 기념품으로 사 갔다. 유물이 해외로 흩어질 것을 걱정한 교황들은 고대 조각 컬렉션을 로마시를 위해 사들였고, 발굴품이 계속 쏟아지자 1769년에는 바티칸에 큰 박물관도 열었다.[1]
3.그리스냐 로마냐
4.가구의 신고전주의
4.1.프랑스: 루이 16세 양식
프랑스에서는 신고전주의를 '루이 16세 양식'이라고도 부른다. 1760년대부터 가구에 쓰이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형태는 그대로 두고 고전 장식만 조금 더했다. 그러다 로코코의 곡선이 점점 단순하고 엄격한 직선으로 바뀌었다. 의자 다리는 곧고 끝이 가늘어지며 세로 홈(플루팅)이 생겼고, 서랍장은 더 이상 배가 불룩하지 않았다.[3]
이 시기에는 서명을 남긴 가구가 많다. 파리에서 서명이 의무가 됐기 때문이다. 장앙리 리즈네르, 마르탱 카를랭 같은 장인과 아브라함·다비트 뢴트겐 같은 독일 출신 장인들이 왕의 후원을 받았고, 이들의 작업장은 루브르 궁 지하에 있었다.[3]
4.2.영국: 애덤 스타일과 그 뒤
영국에서는 1760년 직후부터 신고전주의가 자리 잡았다. 브리태니커는 이 흐름과 떼어 놓을 수 없는 이름으로 건축가 로버트 애덤을 든다.[3] 스코틀랜드 출신인 애덤은 1754년부터 5년 동안 프랑스와 이탈리아를 돌며 고전 유적을 공부했고, 피라네시에게도 배웠다.[2]
애덤은 천장과 벽, 바닥에서 가구, 은기, 도자기까지 실내의 모든 요소를 한 가지 양식으로 맞췄다.[2] 오스털리 저택을 고칠 때는 자물쇠 판과 벽난로까지 직접 디자인했다.[3] 그의 가구는 조지 헤플화이트 같은 장인들이 베끼고 고쳐 썼다(『가구 장인과 실내 장식가 안내서』, 1788). 18세기 마지막 20년 동안 가구는 하트나 방패 모양 등받이, 가늘고 세로 홈을 판 다리처럼 더 가볍고 섬세해졌는데, 토머스 셰러턴의 『가구 장인 도안집』(1791)이 이 흐름을 보여 준다.[3]
야심도 대단했다. 애덤은 이탈리아에서 보낸 편지에서 영국에서 가장 뛰어난 건축가가 되겠다고 썼다. 귀국 뒤 케들스턴 홀 일을 맡았을 때는, 먼저 실내를 맡고 있던 또 다른 신고전주의 개척자 제임스 스튜어트의 디자인을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형편없다"고 깎아내려 그를 밀어내고 집을 직접 완성했다.[2]
4.3.미국: 페더럴 양식
애덤 형제의 새 고전주의는 18세기 말 막 태어난 미국 공화국에서도 유행했다. 세일럼, 보스턴, 뉴욕의 선주와 상인들은 새뮤얼 매킨타이어, 던컨 파이프 같은 장인의 가구로 저택을 채웠다. 작은 직사각형 형태와 밝은 나무색, 대비되는 나무를 끼운 띠 장식이 특징인 이 양식을 '초기 페더럴 양식'이라고 부른다.[3]
4.4.엠파이어 양식
프랑스 혁명 무렵 파리에서 시작된 엠파이어 양식(영국에서는 리전시 양식)은 신고전주의를 이으면서 고고학적 성격이 훨씬 강해졌다. 나폴레옹의 국가 의전실 가구를 디자인한 건축가 샤를 페르시에와 피에르 퐁텐이 이 양식을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 뒤에는 날개 달린 사자 받침, 스핑크스 머리 장식 같은 이집트 문양이 더해졌다.[3]
5.여담: 웨지우드의 포틀랜드 꽃병
18세기에 고대 미술의 최고 걸작 가운데 하나로 꼽힌 것이 로마 시대 카메오 유리 꽃병 '포틀랜드 꽃병'이었다. 짙은 파란 유리 위에 흰 유리를 덧씌운 뒤 깎아 내 흰 인물이 도드라지게 만든 꽃병이다.[5]
영국 도자기 회사를 세운 조사이아 웨지우드는 이 꽃병을 그대로 옮겨 만들면 자기 공장이 고대의 기술을 넘어섰다는 것을 보여 줄 수 있다고 믿었다. 1786년 포틀랜드 공작에게서 꽃병을 빌려, 1770년대에 자신이 개발한 '재스퍼' 도기로 복제를 시작했다. 거의 5년 동안 실험을 거듭한 끝에 1790년 첫 판이 나왔다. 기포가 생기거나 부조가 떨어져 나간 시험작들이 지금도 남아 있다.[5]
6.그림 속의 신고전주의
회화에서는 프랑스 화가 자크루이 다비드가 대표적이다. 프랑스 혁명에 공감했던 그의 「소크라테스의 죽음」(1787) 같은 그림은 자기희생과 의무, 정직, 금욕 같은 시민의 덕목을 그렸다.[1]
7.오브제스타일의 분류 기준
오브제스타일에서 '네오클래식'은 고전 건축의 비례와 요소를 가구와 오브제에 옮긴 지금의 제품을 묶는 이름으로 쓴다. 아래는 이 사이트의 분류 기준이다.
- 형태
- 대칭, 기둥·아치·몰딩·세로 홈(플루팅)·받침대 같은 고전 건축의 요소, 곧고 끝이 가늘어지는 다리
- 소재
- 대리석, 석고, 래커칠한 목재, 황동
- 색
- 흰색·아이보리·회색 같은 돌의 색, 금색 포인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