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개요
2.이름의 유래
'아르누보'라는 말은 1880년대 벨기에 잡지 『라르 모데른(L'Art Moderne)』에 처음 등장했다. 예술로 개혁을 꿈꾸던 화가·조각가 모임 '레 뱅(Les Vingt, 20인회)'의 작업을 설명하는 말이었다.[1][2]
이 이름을 널리 알린 것은 1895년 12월 파리의 미술상 지크프리트 빙이 연 갤러리 '라르 누보(L'Art Nouveau)'였다. 나라마다 부르는 이름도 달랐다. 독일에서는 잡지 『유겐트(Die Jugend)』의 이름을 딴 '유겐트슈틸(젊은 양식)', 벨기에에서는 '국수 양식(Style nouille)', 이탈리아에서는 런던의 상점 리버티 앤드 코의 이름을 딴 '스틸레 리버티', 오스트리아와 헝가리에서는 '제체시온슈틸', 미국에서는 루이스 컴퍼트 티파니의 유리에서 따온 '티파니 스타일'이라고 불렀다.[1]
프랑스에서는 '쥘 베른 양식', 기마르의 지하철 입구에서 따온 '메트로 양식', '벨 에포크 미술', '세기말 미술' 등 이름이 더 많았다.[1]
3.어디서 왔나
아르누보는 19세기 영국의 두 흐름에서 자랐다. 손 공예와 전통 기법으로 돌아가자는 윌리엄 모리스의 미술공예운동, 그리고 '예술을 위한 예술'을 내건 탐미주의다.[1][2] 대륙에서는 폴 고갱과 앙리 드 툴루즈로트레크의 표현적인 선이 영향을 주었다.[2]
1860년대 일본과 교역이 열린 뒤 서양 시장에 쏟아져 들어온 일본 판화(우키요에)의 선적인 무늬, 곧 '자포니슴'도 큰 영감이 됐다.[1][2] 아르누보 디자이너들은 회화·조각 같은 순수미술과 '낮은' 장식미술의 구분에 반대하고, 건물부터 가구와 소품까지 하나로 디자인하는 '총체 예술'을 꿈꿨다.[1]
4.선이 모든 것을 삼키다
5.대표 건축과 장소
건축과 박물관 소장품 소개이며, 오브제스타일에서 다루는 제품과는 관계없다.
5.1.빅토르 오르타의 브뤼셀 주택들
5.2.엑토르 기마르와 파리 지하철
5.3.안토니 가우디
5.4.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은 무대는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였다. 빙은 여기서 아르누보로 꾸민 실내 여섯 곳을 선보였고, 루이 마조렐 같은 가구 장인들의 작품도 함께 나왔다.[1]
6.짧았던 불꽃, 그리고 부활
1910년 이후 아르누보는 낡고 한계가 분명해 보여 독자적인 장식 양식으로는 거의 버려졌다.[2]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이 짧은 불꽃이 장식을 걷어 내고 기능을 앞세운 모더니즘의 전조였다고 보고, 매끈한 표면에 이국적인 무늬목과 상감을 더한 아르데코 가구에서 그 흔적을 찾는다.[1]
다시 빛을 본 것은 1960년대다. 1959년 뉴욕 현대미술관, 1960년 파리 국립근대미술관의 대형 전시, 1966년 런던 V&A의 오브리 비어즐리 회고전이 아르누보를 다른 근대 미술 운동과 같은 반열에 올려놓았다. 대중문화에서는 꽃과 덩굴의 곡선이 사이키델릭 패션과 록 음반 표지의 글자체로 되살아났다.[2]
7.오브제스타일의 분류 기준
오브제스타일에서 '아르누보'는 이 시대의 곡선과 자연 모티프를 이어받은 지금의 제품을 묶는 이름으로 쓴다. 아래는 이 사이트의 분류 기준이다.
- 형태
- 꽃·잎·줄기를 닮은 유려한 곡선, 비대칭의 흐름
- 소재
- 손으로 분 유리, 황동·철 같은 금속, 조각한 목재
- 색
- 올리브·호박·자줏빛 같은 자연의 색과 금빛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