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개요
2.이름을 둘러싼 이야기
이름의 뿌리는 르 코르뷔지에가 쓰던 프랑스어 '베통 브뤼(béton brut)', 곧 날것의 콘크리트다.[1] 그런데 누가 이 말을 처음 썼는지는 자료마다 다르다.
영국왕립건축가협회(RIBA)는 앨리슨 스미스슨이 1953년, 실현되지 않은 런던 소호의 주택 계획을 설명하며 노출 콘크리트와 벽돌, 나무의 창고 같은 미학을 '뉴 브루탈리즘'이라고 부른 것을 처음으로 본다.[3] 브리태니커는 스미스슨 부부가 1954년 르 코르뷔지에의 1930년대 이후 작업을 설명하며 이 말을 처음 썼다고 적고,[2] 테이트 미술관은 건축 비평가 레이너 배넘이 만든 말로 소개한다.[1]
테이트에 따르면 배넘은 프랑스어 '브뤼(brut)'를 영어 '브루탈(brutal, 잔혹한)'로 비틀었다. 이 콘크리트 건축을 보고 영국 사람들이 느낀 질겁을 담은 말장난이었다.[1] RIBA는 1955년 배넘이 스미스슨 부부의 헌스탠턴 학교를 비평한 글이 이 흐름을 하나의 운동으로 자리 잡게 했다고 본다.[3]
3.르 코르뷔지에의 위니테 다비타시옹
4.스미스슨 부부에게 브루탈리즘이란
정작 스미스슨 부부에게 브루탈리즘은 겉모습보다 태도의 문제였다. 설비와 재료, 구조를 숨기지 않는 기능주의로 돌아가자는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그들이 설계한 헌스탠턴 학교(1954)는 강철 보와 프리캐스트 콘크리트 판이 그대로 드러나 있지만, 르 코르뷔지에보다 오히려 유리와 강철의 미스 반 데어 로에를 더 닮았다는 평을 듣는다.[2]
1960년대로 넘어가며 브루탈리즘은 노출 콘크리트가 주도했다. 거푸집 나무판의 결을 그대로 찍어 낸 콘크리트, 망치로 쪼아 거칠게 만든 콘크리트 표면이 대표적이다. 규모가 커지고, 거대한 콘크리트 덩어리와 드러난 환기탑·설비 덕트가 특징이 됐다.[3]
5.대표 건축
건축물 소개이며, 오브제스타일에서 다루는 제품과는 관계없다.
런던 사우스뱅크의 헤이워드 갤러리와 데니스 래즈던이 설계한 국립극장(1976)이 대표적이다.[1][3] 런던의 바비칸 단지는 2차 세계대전 공습으로 거의 폐허가 된 땅에 건축가 챔벌린, 파월 앤드 본이 세운 '도시 속의 도시'다. 약 4,000명이 2,000가구에 살고, 학교와 교회, 도서관, 인공 호수, 온실, 예술 센터가 한데 있다. 고대 로마의 요새부터 프랑스 모더니즘, 지중해의 휴가지, 북유럽 디자인까지 여러 참조를 담았고, 2001년 단지 전체가 영국 2등급 보존 건축물로 지정됐다.[5]
브리태니커는 마에카와 구니오의 도쿄 세타가야 구민회관(1959), 마르셀 브로이어의 뉴욕 휘트니 미술관(1966), 리나 보 바르디의 상파울루 미술관(1968)도 이 이름으로 묶는다.[2] 1925년 바우하우스에서 강관 의자를 만들던 그 브로이어가 콘크리트 미술관을 지었다는 점이 흥미롭다.[6]
6.오브제스타일의 분류 기준
오브제스타일에서 '브루탈리스트'는 이 건축의 태도, 곧 재료와 덩어리를 숨기지 않는 태도를 가구와 오브제에 옮긴 제품을 묶는 이름으로 쓴다. 아래는 이 사이트의 분류 기준이다.
- 형태
- 블록, 두꺼운 판, 단순한 덩어리. 장식 없이 무게가 드러남
- 소재
- 콘크리트, 트래버틴·화강암 같은 돌, 주물 금속, 두꺼운 원목
- 색
- 재료 본연의 회색·베이지·갈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