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개요
아르데코는 1910~1920년대 서유럽에서 시작해 1930년대 미국에서 크게 유행한 장식미술·건축 양식이다. 브리태니커는 이 양식을 '유행이 된 모더니즘'이라고 요약한다. 손으로 만든 사치품부터 대량생산품까지, 매끈하고 전통에서 벗어난 우아함으로 부와 세련됨을 보여 주려 했다.[3]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두 차례 세계대전 사이에 만들어진 방대한 장식미술과 건축을 한데 묶는 이 이름이 "다소 부정확한" 꼬리표일 수 있다고 덧붙이고,[1] 빅토리아 앤드 앨버트 미술관(V&A)은 아르데코를 하나의 스타일이라기보다 여러 양식과 영향을 섞어 만든 혼성에 가깝다고 본다.[2]
2.그 시대에는 없던 이름
그 시대 사람들은 '아르데코'라는 말을 쓰지 않았다. 당시에는 '스타일 모데른', '모더니스틱', '재즈 모데른', '지그재그 모데른' 같은 이름으로 불렸다.[2][5] 록펠러 센터를 설계한 건축가 월리스 해리슨은 생전에, 자기들이 1920~30년대에 지은 마천루가 당시엔 '버티컬', '고담', '뉴욕' 스타일로 불렸다고 회고했다.[5]
'아르데코'는 1966년 파리 장식미술관이 1925년 박람회 양식을 돌아보는 회고전을 열면서 제목으로 고른 줄임말이다. 영국에서는 1968년 베비스 힐리어의 책으로, 미국에서는 1970~71년의 여러 전시로 퍼졌다. 미국의 일부 역사가와 비평가는 '지그재그', '스트림라인' 같은 다른 이름을 밀었지만, 1970년대 후반에는 두 대전 사이의 장식미술 전체를 아르데코라고 부르는 것이 자리를 잡았다.[5]
3.1925년 파리 박람회
20세기 초 프랑스 디자이너들은 아르누보가 상업적으로 실패하고 오스트리아와 독일이 디자인과 생산에서 앞서 나가자 위기를 느꼈다. 18세기에 정점을 찍었던 '사치품의 나라'라는 지위를 되찾는 것이 목표였다.[1]
프랑스 정부는 1912년 장식미술 국제박람회를 후원하기로 했다. 원래 1915년에 열 예정이었지만 1차 세계대전 때문에 미뤄져 1925년에야 열렸고, 7개월 동안 1,600만 명이 넘게 찾았다.[1] 장식가와 제조사, 잡지, 백화점, 외국 정부까지 파리의 건물을 차지하거나 임시 건물을 세우려고 치열하게 경쟁했다.[4]
참가 조건은 '철저히 현대적일 것'이었다. 과거 양식을 베끼는 것은 허용되지 않았지만, 실제로 전시된 것 상당수는 전통에 깊이 뿌리를 두고 있었다.[1] 뉴욕 아르데코 협회 아카이브에 실린 글들은 이 박람회에 독일이 초대받지 못했다는 점, 전시품 가운데 상당수가 1차 대전 전에 디자인되어 10년 넘게 창고에 있던 것이었다는 점도 짚는다.[5]
같은 박람회에서 르 코르뷔지에와 륄만이 정반대의 길을 보여 줬다. 륄만의 화려한 사치품 전시가 그 시절의 들뜬 분위기에 더 잘 맞아 인기를 끌었다.[5]
4.어디서 영감을 얻었나
가장 가까운 뿌리는 바로 앞 세대의 아르누보였다. 아르누보의 꽃과 식물 형태를 빌려 더 단순하게 다듬었고, 요제프 호프만과 찰스 레니 매킨토시처럼 직선적이고 기하학적인 아르누보가 '현대적인 형태'를 찾는 데 직접 영향을 주었다.[2] 브리태니커는 여기에 바우하우스와 큐비즘, 세르게이 댜길레프의 러시아 발레단 '발레 뤼스'를 더한다.[3]
먼 곳의 문화도 큰 역할을 했다. 1922년 투탕카멘 무덤이 발굴되자 연꽃, 스카라베, 상형문자, 피라미드 같은 이집트 문양이 쏟아졌다.[2] 아메리카 원주민 문양과 고전 고대, 자연에서도 장식을 가져왔고, 여성 누드, 동물, 잎사귀, 햇살 무늬가 단순하게 양식화된 모습으로 자주 등장했다.[3]
브리태니커는 기계 시대에 대한 동경을 이 양식의 핵심으로 본다. 단순함, 평면성, 대칭, 같은 요소의 반복처럼 기계로 만든 물건의 성질을 아름답다고 여겼다.[3]
5.재료
6.대표 디자이너
모두 박물관 소장품과 자료를 참고한 설명이며, 오브제스타일에서 판매하는 제품이 아니다.
7.미국의 아르데코
1930년대 아르데코는 미국에서 큰 양식이 됐다. 뉴욕의 록펠러 센터(1929~1940년, 실내는 도널드 데스키 감독), 윌리엄 반 앨런의 크라이슬러 빌딩(1930),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가장 기념비적인 예로 꼽힌다.[3]
1930년대에는 플로리다 마이애미비치의 사우스비치 일대도 아르데코로 채워졌다.[3] 이 지역은 1979년 5월 14일 미국 국가사적지에 등록됐는데, 20세기 도시 지구로는 미국 최초였다. 강한 반대를 무릅쓰고 보존 운동을 이끈 사람은 마이애미 디자인 보존 연맹을 세운 바버라 베어 캐피트먼이었고, 건물 800채가 사적지 구성 건물로 올랐다.[6]
8.쇠퇴와 부활
1929년 주가 대폭락 뒤 1920년대의 낙관은 차츰 사그라들었다. 1930년대 중반에는 아르데코가 '번지르르한 가짜 사치'라는 조롱을 받았고, 2차 세계대전이 시작될 무렵에는 반감이 더 커졌다.[2]
그래도 영향은 오래 남았다. V&A는 그 예로 덴마크 디자이너 포울 헤닝센이 1927년에 만든 PH 램프를 든다. 처음 나온 뒤 작은 수정만 거쳐 지금까지 계속 생산되고 있다.[2] 1960년대 후반부터는 아르데코에 대한 관심이 다시 살아나 21세기에도 장식미술과 패션, 주얼리에 영감을 주고 있다.[3] 파리 장식미술관은 2025년 10월부터 2026년 4월까지 박람회 10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 「1925–2025, 아르데코 100년」을 열었다.[4]
9.오브제스타일의 분류 기준
오브제스타일에서 '아르데코'는 그 시대의 장식 언어를 이어받은 지금의 제품을 묶는 이름으로 쓴다. 아래는 이 사이트의 분류 기준이다.
- 형태
- 대칭, 계단형·부채꼴·햇살·지그재그 같은 기하 장식, 매끈한 곡면과 직선의 대비
- 소재
- 황동·크롬 같은 광택 금속, 유리, 대리석, 무늬목, 래커, 벨벳
- 색
- 검정·크림·금색을 바탕으로 짙은 녹색·청색 같은 깊은 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