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개요
바우하우스는 1919년 독일 바이마르에서 문을 연 미술·공예·건축 학교다. 14년밖에 존재하지 않았지만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건축·디자인·예술 학교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1]
그런데 정작 베를린의 바우하우스 아카이브(조형 박물관)는 "바우하우스는 스타일이 아니다"라고 못 박는다. 학교도, 그곳 사람들이 만든 작업도 너무 다양해서 특정한 색이나 형태로 바우하우스를 알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2] 설립자 그로피우스도 창립 선언문에서 새로운 스타일을 요구하지 않았다. 그가 원한 것은 예술 작업을 공예라는 기초에서부터 다시 세우는 일이었다.[3]
2.역사
2.1.바이마르 시기 (1919~1925)
1919년 4월 12일, 건축가 발터 그로피우스가 바이마르의 작센 대공 미술학교 교장 계약서에 서명했다. 그는 1915년에 이미 문을 닫은 공예학교를 여기에 합치고 '바이마르 국립 바우하우스'라는 새 이름을 붙였다.[3] 학교 설립을 기록한 공식 문서는 따로 없어서, '바우하우스'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하는 기록이 바로 이 계약서다.[2]
같은 달 나온 창립 선언문 표지에는 리오넬 파이닝거가 새긴 목판화 '대성당'이 실렸다. 중세에 여러 분야의 장인이 대등하게 모여 대성당을 지었듯, 건축과 공예와 미술을 하나로 묶겠다는 뜻이었다.[1] 건축 학교로 이름났지만 초기에는 건축 강좌가 몇 개 있었을 뿐이고, 건축과는 1927년에야 생겼다.[3]
1920년 겨울 학기부터 모든 학생은 요하네스 이텐의 '예비 과정'을 먼저 거쳐야 했다.[3] 1923년에는 방향이 크게 바뀐다. 이텐이 떠나고 라슬로 모호이너지가 그 자리를 이었고, 그로피우스는 "예술과 기술, 새로운 통일"을 내걸었다. 그해 여름 첫 바우하우스 전시를 열면서 시범 주택 '하우스 암 호른'도 지었다.[2][3]
2.2.데사우 시기 (1925~1932)
2.3.베를린 시기와 폐교 (1932~1933)
3.무엇을 어떻게 가르쳤나
4.대표 작품
모두 박물관 소장품을 참고한 설명이며, 오브제스타일에서 판매하는 제품이 아니다.
4.1.클럽 체어 B3 — 마르셀 브로이어
브로이어는 바우하우스에서 가르치던 1925년 강철 파이프로 이 의자의 첫 버전을 만들었다. 그는 자전거 핸들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튼튼하고 가볍고 대량으로 생산되는 강관을 핸들로 구부릴 수 있다면 가구로도 구부릴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1년도 안 돼 곳곳의 디자이너들이 강관 가구를 실험하기 시작했다.[5]
지금 널리 쓰이는 '바실리 체어'라는 이름은 이 의자를 칭찬한 동료 교수 바실리 칸딘스키에게서 왔다. 정작 브로이어는 이 의자를 자기 작업 가운데 가장 극단적이고, 가장 덜 예술적이며, 가장 덜 아늑하고 가장 기계적인 것이라고 했다.[5]
4.2.캔틸레버 의자
뒷다리 없이 앞쪽 강관의 힘만으로 버티는 캔틸레버 의자는 마르트 스탐이 처음 개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훗날 바우하우스의 마지막 교장이 되는 미스 반 데어 로에는 1927년 독일공작연맹 전시 '주거'에서 곡선 캔틸레버 의자 MR을 선보이고 특허를 냈다.[6]
4.3.바우하우스 램프 — 빌헬름 바겐펠트·카를 야코프 유커
둥근 받침, 원통 기둥, 공 모양 갓. 1923~1924년 모호이너지가 새로 꾸린 금속 공방에서 나왔고, 공장 조명에만 쓰던 불투명 유리를 갓으로 가져왔다. 그런데 1924년 처음 팔아 보려 했을 때는 실패했다. 대량생산을 염두에 둔 디자인이었지만 정작 부품 대부분을 바우하우스에서 손으로 조립하고 있었기 때문이다.[7]
4.4.찻주전자 — 마리안네 브란트
여학생 대부분이 직조 공방으로 가던 시절, 브란트는 모호이너지의 권유로 거의 남자들만 있던 금속 공방에 들어갔다. 1924년 학생 때 만든 이 찻주전자는 일상 물건을 기본 도형의 조합으로 줄인 작업이다. 손으로 두드려 만든 시제품으로 남았지만, 이후 그의 금속 디자인 일부, 특히 조명은 실제로 대량생산됐다.[8]
5.'바우하우스 색'은 없다
바우하우스 하면 빨강·파랑·노랑 원색과 삼각형·사각형·원을 떠올리기 쉽지만, 바우하우스 아카이브에 따르면 정해진 '바우하우스 색과 형태'는 없다. 다만 클레와 칸딘스키의 수업에서 학생들은 색과 형태가 주는 효과를 깊이 파고들었다. 칸딘스키는 삼각형·사각형·원에 빨강·파랑·노랑 가운데 어떤 색이 어울리는지 학생들에게 설문을 돌렸는데, 답은 꽤 엇갈렸다고 한다.[2]
6.문을 닫은 뒤
학교는 사라졌지만 사람들이 미국, 스위스, 러시아, 이스라엘 등지로 흩어지면서 생각은 오히려 더 멀리 퍼졌다. 요제프 알버스는 미국 블랙마운틴 칼리지에서 가르쳤고, 모호이너지는 1937년 시카고에 '뉴 바우하우스'를 세웠다. 그로피우스는 하버드 디자인대학원 교수로, 미스 반 데어 로에는 시카고 아머 인스티튜트의 건축과장으로 갔다.[4]
독일에서는 1955년 문을 연 울름 조형대학이 바우하우스 정신을 이었다. 첫 학장은 바우하우스에서 공부한 막스 빌이었다.[4] 1996년 바이마르와 데사우의 바우하우스 건물들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올랐고, 2017년 데사우의 발코니 진입식 주택과 베르나우의 ADGB 노동조합 학교가 더해졌다.[9]
7.오브제스타일의 분류 기준
바우하우스는 스타일이 아니라 학교였기 때문에, 오브제스타일에서 '바우하우스'는 그 학교가 남긴 원칙을 이어받은 제품을 묶는 이름으로 쓴다. 아래는 이 사이트의 분류 기준이다.
- 형태
- 원·사각형·원통 같은 기본 도형, 직선과 격자, 구조와 이음이 드러남
- 소재
- 강관·판금 스틸, 알루미늄, 크롬, 유리, 합판
- 색
- 검정·흰색과 금속 본연의 색이 바탕. 강한 단색을 한두 군데 쓰기도 한다
- 만드는 방식
- 공장에서 반복해 만들 수 있도록 단순하게 설계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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