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개요
2.디자인 마이애미
디자인 마이애미는 2005년 사업가이자 부동산 개발자, 미술·디자인 수집가인 크레이그 로빈스가 세웠다. 로빈스는 2000년부터 버려져 있던 마이애미 디자인 디스트릭트를 디자인·패션·미술의 중심지로 바꾸는 일을 해 왔고, 그 재생이 디자인 마이애미로 이어졌다.[1]
창설 논리는 단순했다. 로빈스의 말을 빌리면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아트 페어와 열대의 낙원을 합치면 어떻겠느냐는 것이었다. 디자인 마이애미는 미술 박람회 아트 바젤의 짝으로 출발했다.[2]
지금은 해마다 12월 마이애미비치와 10월 파리에서 열리며, 박물관 수준의 20~21세기 가구와 조명, 오브제를 엄격한 심사를 거쳐 선보인다.[1]
3.올해의 디자이너
로빈스와 공동 창립자 앰브라 메다는 상업적인 페어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보고, 해마다 '올해의 디자이너'를 뽑기로 했다. 첫 수상자는 2005년의 자하 하디드로, 그는 무어 빌딩에 거대한 조형물 「엘라스티카」를 만들었다.[2]
2007년 올해의 디자이너 요시오카 도쿠진은 같은 건물에 플라스틱 빨대로 만든 설치 작품 「토네이도」를 선보였다. 로빈스는 빨대가 200만 개쯤이었던 것 같다고 회상한다.[2]
로빈스에 따르면 디자인 마이애미는 한정판 디자인 시장이 비록 작지만 미술과 나란히 자리할 큰 잠재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고, 2006년에는 스위스 바젤에서도 페어를 열었다. 바젤 진출을 권한 사람 가운데에는 갈르리 크레오의 크젠토프스키 부부도 있었다.[2]
4.컬렉터블 디자인 갤러리
4.1.갈르리 크레오: 디자인 실험실
파리와 런던에 공간을 둔 갈르리 크레오는 디디에·클레망스 크젠토프스키 부부가 세운 갤러리다. 두 사람이 처음부터 그린 것은 '디자인 실험실'이었다. 산업 생산으로는 불가능한, 새롭고 다른 프로젝트를 디자이너가 아무 제약 없이 펼치게 하고 그것을 갤러리가 직접 만든다는 것이다.[3]
로낭·에르완 부룰렉, 헬라 용에리우스, 콘스탄틴 그르치치 같은 디자이너들과 일하며 재료의 한계를 밀어붙이거나 새로운 형태와 유형을 실험한 작품을 내놓았다. 디디에는 1950~80년대 이탈리아 조명의 가장 큰 컬렉션을 모았다고 말한다. 클레망스는 1992년 알베르빌 동계 올림픽 조직위원회에서 일하며 필리프 스타르크에게 성화봉 디자인을 맡긴 것이 디자인과의 첫 큰 인연이었다고 회고한다.[3]
4.2.카펜터스 워크숍 갤러리: 목공소에서 시작한 갤러리
5.오브제스타일의 분류 기준
컬렉터블은 형태로 정해진 스타일이 아니어서, 오브제스타일은 아래 기준으로 이 이름을 쓴다.
- 만드는 방식
- 한정 수량, 작가나 공방의 수작업, 갤러리·디자인 페어에서 발표된 작품
- 형태
- 기능보다 조형이 먼저 보이는 형태, 실험적인 재료 사용
- 소재
- 레진, 주물 금속, 석재, 손으로 분 유리, 조각한 목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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